- 출생 충남 태안군 원북면 1946년 5월 28일
- 거주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
- 제 11,12대 인천광역시장
- 현 홍준표 공동선대위원장
안상수는 기업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인천광역시장과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로 활동했다.
충청남도 태안군 시골 마을 가난한 어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재학 중에 인천으로 혼자 유학을 갔고 이모 댁에 머물렀다고 한다. 인천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자취를 하고 신문팔이,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당대의 최고 명문고등학교 경기고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등록금을 빌리러 다녀야할 정도였다고 한다.
경기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학과(현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경기고 3학년 때 3선 개헌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가 주동자로 몰려서, 학교에서는 법대 등 주요 학과의 입학원서를 써 주지 않아 사범대 체육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그의 30대 초반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또 안상수의 부인 정경임 교수는 결혼 이후 뇌졸중의 일종인 모야모야병이라고 하는 희귀성 질환을 앓다가 회복되었으나, 그 기쁨도 잠시 1999년 8월, 다시 쓰러져 2010년 1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식물인간으로 지냈다. 안상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로 부부가 같이 살던 아파트를 아내의 모교인 이화여대에 기부했다. 이화여대는 '정경임 글로벌 인재 육성장학금'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제세산업을 거쳐 동양그룹에서 근무했으며, 1996년 신한국당의 전문경영인 영입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에 출마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이기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년뒤인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한나라당 인천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당시 전국을 휩쓴 DJP 열풍과 불과 1년 전 전국민을 울렸던 IMF 사태의 여파, 그리고 인기 절정이였던 현직 시장 최기선 후보의 아성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 지역구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 송영길을 누르고 당선되어 약 1년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다시 송영길과 맞붙어 낙선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출마, 당선되었고 2006년 전임 시장인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각종 실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3선에 도전했지만 송영길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번의 인천시장으로 있으면서 인천 재정을 파탄을 내고 인천을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최 하위권의 재정으로 만들어 놨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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